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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의 마을 섬진강이 흐르는 강변에 자리잡은 전라남도 곡성의 작은 마을, 송정리. 마을 사람들 은 심청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이 동네 한가운데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심청이가 마을 아낙네들에게 젖을 얻어 먹던 곳이라고 한다. 이 우물은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데, 마을 사람들은 심청의 효심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송정리 사람들은 심청이가 왜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을까. 2. 관음사 사적기 곡성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송광사에 송정리 사람들이 심청이 실존 인물이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면서 조심스럽게 내보이는 관음사 사적기였다. 관음사 사적기는 심청과 같은 한 효심 깊은 처녀와 맹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내용은 심청전과 거의 같았는데, 다만 주인공이 심청이 아닌 원홍장이라는 처녀였다. 3. 관음사의 홍장보살상 관음사는 원홍장이 보내온 불상을 모셔서 창건한 절이다. 중국으로 건너간 원홍장이 불상을 만들어서 고향으로 보낸 시기를 나타내는 기록을 보면, 서기 300년. 그러니까 원홍장은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의 인물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의 한적한 산자락에 위치한 관음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고 평범한 절이었다. 하지만 관음사는 17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4. 중국과 곡성을 잇는 뱃길 인당수에 빠지는 소설 속의 심청의 운명과는 달리 실존 인물 원홍장은 중국으로 무사히 건너갔다. 그리고 고향으로 불상을 보냈는데, 원홍장 처녀가 불상을 보낸 중국 절강성과 한반도 곡성은 엄청난 거리이다. 절강성 근해의 보타도 앞바다에는 신라초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다. 신라 상인들이 관음상을 싣고 가려다가 이 바위에 부딪혀 좌초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처럼 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했을 1700년 전에, 불상을 실은 배가 대양을 건너 곡성까지 올 수 있었을까. 5. 중국 상인들이 곡성에 들어온 이유 원홍장이 살았던 서기 300년경에는 중국과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시기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 상인들은 그 많은 지역 중에 왜 하필이면 내륙 깊숙한 곡성까지 들어와서 처녀를 데려갔을까. 원홍장의 빼어난 미모 때문이었을까. 심청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검붉은 담벼락이다. 비만 오면 녹물이 흘러내린다는 돌담, 돌담을 쌓은 돌들이 철 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상인들이 내륙 깊숙한 곡성까지 온 이유도 이 철 때문이었다. 6. 인당수와 용궁 인당수는 과거 바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최대의 표현은 인신공희. 사람을 제물로 삼았던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중국으로 가는 길목인 위도와 죽망동 일대에서 인신공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7. 심청전의 다양한 공간 배경 백령도와 부안 외에도 심청이와 관련된 설화나 지명이 전해지는 곳은 의외로 많다. 그런데 이 지역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다와 통하는 곳에 오래된 마을과 절이 있고, 해상 교통이 가능했던 지역이라는 것이다. 내륙 역시 과거에 바다였거나 강을 통해 바다와 교통이 이어지는 곳이다. 심청전은 뱃길로 이어진 한국과 중국 간 교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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