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세력, 내시
‘내시’라는 단어를 들으면 음흉한 눈초리와 가냘픈 목소리, 그리고 쪼그라진 어깨에 종종걸음을 걷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의 고정 관념이다. 하지만 내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대 권력자인 왕의 최측근으로 있으면서 때로는 정사 깊숙이 개입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특수한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에서는 내시가 어떤 존재였을까?
 
     세부설명
  1. 내시들에게는 공동묘지가 있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버려진 무덤 - 그것은 내시들의 공동 묘지였다.
후손들은 내시가 자신의 조상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했기 때문에 내시들의 무덤은 없어지거나 훼손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왕을 모시며 궁궐에서 근무하는 벼슬 높은 관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동네에서 가장 큰 어른으로 대접 받았다. 그러나 내시들은 왕조의 몰락과 함께 그 존재까지도 점점 잊혀져 갔다.


2. 내시들의 후손을 찾아

신체적으로 불구였던 그들이지만 비석의 내용에 따르면 내시들은 분명 부인과 자식이 있는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내시는 양자를 들여 후손을 이어나갔다. 그 가계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3. 내시도 출퇴근을 했다

내시가 궁궐에서 생활하다 궁에서 생을 마쳤을 거라는 사람들의 상식과는 달리 내시부는 경복궁 바로 옆 지금의 효자동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하여 궁 밖에 있었다. 왕실의 수발을 들기 위해서 내시부는 궁궐로 파견부를 설치하였는데 이를 내반원이라 하였다.


4. 내시, 그들은 누구인가?

중국의 경우 내시에 대한 기록은 3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나라는 9세기 신라 흥덕왕 때 처음 등장한다. 당시 내시는 신성한 존재와 속세의 인간을 이어주는 중간자, 거세를 통하여 욕망을 극복한 자들로서 황제의 신성함을 높이기 위해 필요했다. 궁형이 없던 우리나라는 갖가지 방법으로 내시가 충원되었는데 개중에는 사설 양성소까지 있었다고 한다.


5. 제3의 권력 - 내시

왕과 가까이 있으면서 내시는 궁중 내의 많은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정치적 혼란기에는 이들이 관여될 여지가 많았다. 특히 극비에 속하는 정책,간첩,국제첩보에 관한 사항에 내시들이 간여한 경우가 많았다. 또 부를 축적할 기회도 많았는데 이는 왕실의 재산관리, 각종 공사 등을 이들이 맡아서 했기 때문이다.


6. 내시에 대한 오해

내시 김계한은 임진왜란 당시 목숨을 걸고 선조를 구해냈다. 그 공을 인정하여 공신에 봉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분명한 공을 세웠는데도 내시라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가 무시되었던 경우는 태반이었다. 역사는 그들을 비하하고, 분란을 일으킨 행적만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궁중의 사람으로 자기 직분에 충실했던 수많은 내시들이 있었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내시는 천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역할은 변형된 형태로 현재도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