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스티코프의 비밀수첩, 김구는 왜 북으로 갔나?
“북조선의 헌법에 대해, 1947년 북조선 경제계획 달성, 한반도 상황. 그리고 스탈린 동지가 한국에 대한 문제를 전면 검토하고 싶어한다 ….” 김구의 사후 50년 뒤 한 소련군 장교의 비밀수첩이 발견되었다. 우리는 분단 직전 한반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 수첩에서 김구를 만날 수 있었다.
 
     세부설명
  1. 쩨렌찌히 스티코프

스탈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스티코프는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게 된다. 그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미소공동위원회의 소련측 대표였고, 초대 북한주재 소련대사였다. 취재팀은 러시아 방문을 통해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한 권의 수첩을 발견했다. 북한의 실권을 쥐고 있던 스티코프가 직접 기록한 가상 통일정부 내각 명단이었다.


2.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김구

스티코프의 수첩 속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김구이다. 당시 38선 이남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김구는 민족지도자로서 명성이 높았지만 소련으로서는 무척 껄끄러운 정치인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스티코프는 왜 백범 김구에게 주목했을까. 1948년 4월 평양에서는 남북연석회의라는 이름으로 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담에 김구가 참석했던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남과 북이 분단되기 이전인데, 백범 김구가 참석한 남북연석회의는 과연 어떤 회담이었을까.


3. 한반도 상황

일제시대, 김구는 일본군을 물리치기 위해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는 좌우합작운동을 벌인다. 그리고 임시정부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좌우 대통합을 이룬다. 김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연안에서 활동중인 또다른 좌파의 독립운동세력과의 합작을 추진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독립운동 세력이 하나로 힘을 모았지만 그 힘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게 된다. 김구는 예상치 못한 해방을 두고두고 안타까워 했고, 한반도의 운명은 해방의 감격에 젖어있는 동안 또 다른 비극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4. 북행 길에 오르는 김구

조국의 위기상황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타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과정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김구는 사전준비를 위해 측근들을 북으로 먼저 보낸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 북행 길에 오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출발이었다. 학생들과 시민 4-500명이 김구의 북행 길을 막기위해 몰려들었고, 출발은 계속 지연되었다. 김구는 탈출을 시도한다.


5. 남북연석회와 4김 회의

불투명했던 김구의 입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남북회담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이 참석한 4김 회담은 남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만난 실질적인 회담이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회담이었다. 그리고 4개항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6. 약속의 결렬

북으로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민족통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돌아온 김구. 그러나 5.10총선으로 1948년 남한 단독 정부인 이승만 정권이 들어선다. 결과적으로 남북연석회의는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김구가 북한정부에게 이용당했다는 의견과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남북연석회의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